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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곽의 도서관] 독서후기 2023-67. 불펜의 시간 - 김유원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Herr.Kwak 2024. 1. 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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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장강명의 『표백』, 강화길의 『다른 사람』,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서수진의 『코리안 티처』 등 1996년 제정되어 오랜 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한겨레문학상이 스물여섯 번째 수상작 『불펜의 시간』을 출간한다. 심사를 맡은 전성태 소설가로부터 “선명한 인물들, 선 굵은 서사”가 시원하다는 평을 받은 수상자 김유원은 [개청춘](공동연출),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의자가 되는 법] 등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불펜의 시간』은 야구라는 스포츠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얽힌 세 사람이 무한경쟁 시스템 안에서 부서지며 겪는 성장의 시간을 담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206편의 유수한 경쟁작을 뚫고 당선된 『불펜의 시간』은 문학상 심사 당시 “야구라는 주제를 각 인물의 이야기에 걸맞게 직조해내는 균형감”이 뛰어나고, “스포츠 서사에서 익숙한 자기 성장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관점으로 흡입력 있게 뻗어나가”며 기존의 소설과 다른 저력을 뽐내는 작품으로 단단한 지지를 받았다.

심사위원인 정용준 소설가는 이 소설이 “한때는 MVP였지만 지금은 불펜의 시간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역전 만루 홈런” 같은 전형적인 서사를 탈피함으로써 “극적인 엔딩을 넘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되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오혜진 문학평론가는 추천의 말에서 “승부, 성과, 특종이라는 명목으로 무한경쟁과 소수의 독식을 정당화하는 사회, (…) ‘이게 나라냐’라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 ‘폐허’에서 개인은 뭘 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일깨운다는 점에서 『불펜의 시간』을 문제작으로 꼽았다. 한 편의 영상을 보듯 촘촘히 짜인 서사, 생동하는 인물들, 섬세하고 박진감 넘치는 문체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작가의 이력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 작가 소개 - 

 


1982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여성영상집단 ‘반이다’로 미디어 활동을 했다. 2009년 [개청춘](공동연출), 2011년 [그 자식이 대통령 되던 날], 2014년 [의자가 되는 법] 등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의자처럼 살고 싶었으나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쓰고 있다. 『불펜의 시간』을 썼다. 무너지지 않고 나아가는 힘에 관심이 있다.

(* 해당 책 소개와 작가 소개는 인터넷 YES24에서 참고하였습니다.)

 


 

불펜. Bull pen.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익숙한 단어겠지만,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는데요, 불펜은 야구에서 구원 투수가 경기 중에 준비운동을 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며, 어원에서 살펴보면 황소 우리를 뜻하는 말로써, 이는 불펜이 미국에서 울타리가 쳐있는 곳에서 투수들이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치 울타리를 치고 소를 키우는 목장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제목이 불펜의 시간이니 일단 불펜이 무엇인지는 알아야지 책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더 도움이 되겠죠?

 

자, 그럼 이제 책으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은 혁오라는 야구선수일 수도 있고 준삼이라는 평범한 사회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화자가 준삼이기에 준삼을 주인공으로 볼 수도, 준삼의 시점에서 혁오라는 인물을 바라보며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혁오를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요, 보시는 분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전 읽는 동안 준삼을 주인공으로 바라보고 읽었습니다. 혹시 읽어보신 분 계시다면 여러분의 주인공은 누구였나요?

 

책은 준삼의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혁오의 중학 야구부 동창으로 아름다운 투구폼을 가진 혁오를 동경하던 (지금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야구를 그만두고 지내며 증권회사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준삼입니다. 어느 하나 튀지도 않고, 그저 묵묵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며, 가끔 부조리에도 눈감고 못 본척하는. 딱 일반적인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인물 준삼입니다. 그런 그가 야구경기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선수는 당연하게도 혁오입니다.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폼에 여전히 빠져있는데요, 하지만 혁오는 입단 후 뜻하지 않은 사고로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고, 그 트라우마를 깨지 못한 채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단했음에도 선발진에 자리잡지 못하고 중간 계투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중간 계투는 숙명적으로 불펜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선수이기도 하죠. 그런 그를 한 스포츠신문 기자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혁오에게 승부조작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등장인물. 앞서 언급한 혁오에게 관심을 가지는 스포츠신문 기자 기현입니다. 초등학교 당시 또래 남자들보다 우수한 실력을 가진 야구선수였지만 여자 야구부는 없다는 이유로 중학교 진학과 함께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했기에 스포츠신문 기자가 됩니다. 그리고 스포츠신문 최초 여자 편집장을 꿈꾸며 특종을 찾다가 승부조작, 그리고 혁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혁오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다른 브로커를 통해 프로선수들의 승부조작 녹음 파일도 입수하게 되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속한 신문사 내부 비리에 발목을 잡히게 되는데요.

 

그리고 또 한명이 더 있네요. 바로 진호. 진호는 혁오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해오던 친구인데요, 뛰어난 타자로 이름을 날리지만 운동선수 출신 엄마의 눈에는 혁오가 더 들어오고, 비교를 당하게 되는데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친구 혁오에게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프로 데뷔를 위한 마지막 무대인 전국체전 결승에서 혁오에게 완봉승을 당하고, 그 좌절감 속에서 다음날 불의의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이 죽음이 바로 혁오가 가지게 되는 트라우마인데요, 혁오는 자신이 진호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얽매여 중요한 경기마다 타자가 진호로 보이게 되고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준삼, 혁오, 기현 그리고 진호. 4명의 이야기와 함께 소설은 진행이 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혁오, 기현 그리고 준삼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경쟁에 실패하고 어쩌면 도태되지만, 자신의 삶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뛰어난 선발투수가 되지 못하고 볼넷을 던지는 투수 혁오. 불안장애 속에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준삼. 그리고 회사의 비리 속에 발목을 잡혀 패하고 마는 기현. 어쩌면 셋 모두 실패한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운드를 향하든, 마운드에서 내려오든, 마운드에 서지 못하고 다시 벤치로 돌아가든, 삶은 엔딩 없이 이어지는 끝없는 이야기와 같다”라는말처럼 종국에는 낙담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실패를 관리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볼넷을 던지도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지만 만족하는 혁오, 불안장애를 겪고 회사에서 구조조정 위기에 처하지만 내면의 그 와중에 마음 속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준삼. 그리고 특종에 목을 매던 기자에서 특종이 아니라 진실을 알기 위해 끝까지 파헤치는 기자가 된 기현의 이야기를 통해 실패는 실패 그 자체로 끝이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을. 그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만의 리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고 작은 실패 속에 숱한 후회와 자책속에 살아가는 우리들. 일상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절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을 이어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 불펜의 시간이 얼마나 값지고 멋진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그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힘을 가질 수 있음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어쩌면 모두 각자 나름의 등판을 위해서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을 우리들. 저, 그리고 여러분들. 우리의 등판이 더 멋져질 수 있도록 불펜의 시간을 잘 가꾸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을, 또 한 번 찬란하게 뛰어오를 그 순간을 위한 불펜의 시간을 견디고 있을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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