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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곽의 도서관] 독서후기 2023-36.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The Perfect Nanny)

Herr.Kwak 2023. 12. 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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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단 12번째 여성 작가
전 세계적인 문학 스타의 탄생, 레일라 슬리마니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35만 부 판매
『달콤한 노래』는 한마디로, 올해 최고의 책이다.[리르]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두 아이가 살해됐다. 완벽해 보였던 보모의 손에. 그녀는 왜 그토록 아끼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프루스트, 보부아르, 뒤라스 등 최고 작가들의 손을 들어준 세계적인 문학상 공쿠르상이 선택한 작품 『달콤한 노래』가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여성 작가로는 113년 공쿠르상 역사상 12번째 수상이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공쿠르상은 젊고 유망한 작가에게 시상한다는 본래 취지로 돌아갔다. 우리는 슬리마니가 현재를 이야기하는 진정한 작가라고 확신한다.”, “2016년 공쿠르의 선택은 아주 시의적절하다.”라고 극찬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책이 레일라 슬리마니의 단 두 번째 작품이라는 점이다. 알베르 카뮈의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이방인』)라는 첫 문장처럼, 슬리마니는 “아기가 죽었다.”라는 충격적이고 과감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안겼다. 『달콤한 노래』는 출간 1년여 만에 35만 부 이상 판매되며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작가는 프랑수아즈 사강을 잇는 프랑스의 문학 스타로 부상했다.

 

- 작가 소개 - 

 


1981년 모로코 라바트 출생. 1999년 프랑스로 이주해 파리 정치대학을 졸업했다. 잠시 배우의 삶을 꿈꾸다가 2008년부터 시사 주간지 [젊은 아프리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4년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다룬 첫 소설 『오크의 정원에서』를 발표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16년에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를 출간한 후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수상 전부터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1년 만에 35만 부가량 판매되었고, 슬리마니는 프랑수아즈 사강을 잇는 프랑스의 문학 스타로 부상했다. 이로써 작품성과 대중성,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동시에, 공쿠르상을 수상한 역대 열두 번째 여성 작가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는 이슬람 사회와 테러 등 세계적인 이슈를 다룬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모로코의 열악한 여성 인권을 주제로 한 『섹스와 거짓말』 등을 출간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해당 책 소개와 작가 소개는 인터넷 YES24에서 참고하였습니다.)

 


 

아기가 생기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모든 것이 복잡해졌다. 장보기, 목욕시키기, 병원 가기, 집안일 등등. 미리암은 침울해졌다.

변호사로 일을 하던 순간이 그리웠다. 미리암은 남편과 상의 끝에 보모를 고용하기로 결론을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완벽한' 보모를 한 명 집으로 들이게 되었다.

보모는 놀랍도록 빠르게 그들의 삶에 스며들었다. 두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집을 밝고 평온한 공간으로 바꾸었다.

미리암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저녁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차분했고 머리도 곱게 빗겨 있었다. 미리암이 꿈꾸던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 보모는 요정이에요." 다른 사람들에게 보모를 소개할 때 미리암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보모의 헌신에서 조금씩 이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미리암의 가족이 일주일간 남편의 부모님 댁에 갈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보모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식구들을 데리러 와서 아이들과 침대에서 뒹굴며 장난을 칠 때, 보모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보고 서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본 미리암은 왠지 모르게 보모에게서 아이들을 빼앗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미리암의 가족이 떠난 후, 보모는 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공포에 질려 자기 이마를 쳤다.

보모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두 아이가 모두 자라 보모가 필요 없어지면 자신의 자리가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모는 궁리 끝에 미리암 부부에게 아기가 하나 더 생긴다면 그 아기가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부부에게 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칭얼거리는 두 아이 때문이라고.

미리암이 일찍 퇴근한 어느 날, 보모는 미리암에게 두 아이를 데리고 저녁 식사를 학호 오겠다고 했다. 미리암은 내키지 않았으나 청을 들어주었다.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간 보모는 밤늦게까지 시간을 끌다가 돌아갔으나, 미리암은 남편이 퇴근하기도 전에 잠들었고 남편은 소파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이후 깊은 우울감이 보모를 덮쳤다. 아이들을 잠깐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보모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새 아기가 생기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라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소개글에 이렇게 나왔습니다. "그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책을 다 읽고 그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왜 보모 루이즈는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 그 행동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책이 말미에서 그녀의 행적을 좇던 형사의 이야기에서도 그러하듯, 그 행동을 정확히 도출하지 않고 소설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루이즈라는 인물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그녀에 대한 생각도 끊임없이 이어지며 많은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와이프의 임신소식을 듣고, 독일에서 헤바메라고 하는 조산사를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또 불현듯 이 소설의 보모 루이즈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달콤한 노래"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를 하자면 -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위에서 이미 언급을 했기에 배제하고 - 결코 달콤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요, 결코 달콤하지 않은 이 책의 제목을 왜 "달콤한" 노래라고 지었을까 말이죠. 단순히 달콤하지 않은 것을 달콤하다고 이야기하는 반어적인 표현에서 오는 반전 때문이었을까 혹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까 말이죠. 더불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에서 나오는 주인공들. 특히 여성들의 상황은 조금씩 사회와 단절되고 소외된 이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미리암의 경우 경력이 단절된 여성, 산우 우울증을 겪는 엄마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고, 보모 루이즈의 경우 변방의 국가에서 온 이민자, 계급적 소외를 겪는 빈민층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기가 죽었다." 이 부분에서 평론가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시작과 비슷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 이방인을 읽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 우선 저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결론을 두괄식으로 소설의 첫 부분에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소설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어떻게 그러한 결과가 나왔을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게 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루이즈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지며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래서일까요, 그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오히려 그 부부에서 섬뜩함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앞서 이야기했던 부분과 일맥상통하지만, 이야기의 결론 그리고 이야기의 진행은 중요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아기가 죽었다."로 시작되지만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왜"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할까요? 루이즈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녀의 삶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와이프와 상반된 의견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와이프는 "루이즈의 상황이 공감이 가고, 그녀가 안쓰럽다."는 편이었고,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즈는 용서받을 수 없다. 이해받을 수 없다."는 편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어쩌면 사회가 만들어놓은 계급사회에서, 그 외로움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루이즈는 과연 가해자일까요 피해자일까요?

 

이렇게 이 책은 소설이지만, 그 내용을 통해서 엄마의 이야기, 이민자의 이야기, 사회 계급의 이야기, 외로움의 이야기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에 대한 토론을 유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경력이 단절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행복하지만 우울감을 느끼고 무기력함을 느꼈던 엄마 미리암. 그리고 빈민층으로 살아가며 소외된 삶을 살고 있던 루이즈. 그들 사이에서 채워지지 못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미리암은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 빈민가 골목길에서 미리암을 보게 되는데요, 미처 인사를 건넬 수도 없을 정도로 자신이 알던 보모 루이즈와는 사뭇 달랐던 모습과 분위기의 루이즈. 자신이 알던 루이즈가 아니었던 루이즈. 요정 같은 보모라고, 요정같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던 미리암은 과연 루이즈를 그동안 알긴 했던 것일까요?

 

이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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