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독서노트/소설-시-희곡

[헤어곽의 도서관] 독서후기 2023-03. 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Herr.Kwak 2023. 11. 1. 16:00
반응형

 

- 책 소개 - 

 


첫 문장의 강렬함이 채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숨 가쁘게 내달린다.
그리고 문득 눈앞을 가리는 아득한 심연!


수식어가 필요 없는 작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김영하다. 올해로 데뷔한 지 19년. 하지만 그는 독보적인 스타일로 여전히 가장 젊은 작가다. 그의 소설은 잔잔한 일상에 ‘파격’과 ‘도발’을 불어넣어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그가 일깨운 우리의 일상은, 매순간이 비극인 동시에 또한 희극이다. 슬픔과 고독, 아이러니와 패러독스의 인물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 곁을 스쳐지나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김영하는 어느새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데뷔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김영하는 우리에게 자살안내인을 소개했다. 판타지이고 허구인 줄만 알았던 그의 역할이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한 우리는 이제 다시 그 강렬했던 경험을 만나게 된다.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후 일 년 반 만에 신작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들고 김영하가 돌아왔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점점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딸을 구하기 위한 마지막 살인을 계획한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잠언들, 돌발적인 유머와 위트, 마지막 결말의 반전까지, 정교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이번 소설에서 김영하는 삶과 죽음, 시간과 악에 대한 깊은 통찰을 풀어놓는다.

 

- 작가 소개 -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여행에 관한 산문 『여행의 이유』와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냈고, 산문집 삼부작 『보다』, 『말하다』, 『읽다』 삼부작과 『랄랄라 하우스』 등이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문학동네작가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들은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해외 각국에서 활발하게 번역 출간되고 있다.

(* 해당 책 소개와 작가 소개는 인터넷 YES24에서 참고하였습니다.)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에 대한 완벽한 배반,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이 낯선 기분들과 이 기분들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는 체험이 결정적이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책의 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김영하 작가의 이 책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책의 결론에서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은, 그 설명할 수 없었던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그보다 더 짧고 명확하게 이 책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김영하 작가. 데뷔 19년차를 맞은 김영하 작가는 독고적인 스타일로 인기를 누리는 작가이면서도, 최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TvN 예능 알쓸신잡에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이들에게 인지도를 더 높이고 확고히 한 어쩌면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어쩌면 이미 대표하고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의 이유", "랄랄라 하우스", "여행자 도쿄"등 산문집에서 먼저 만났던 김영하 작가의 글과 소설로 만난 김영하 작가의 글은 동질감이 있으면서도 이질감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산문집에서 보여주었던 조금은 느슨하고 여유로운 모습과 소설에서 보이는 강렬함(특히 이번 소설에서)이 가지는 것이 이질감이었다면, '역시 이게 작가지'라고 생각할 만큼 탁월한 표현력을 보여주는 것이 동질감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김영하 작가님은 워낙 유명하시니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줄이고, 소설로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 책을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었고, 설경구 님께서 열연을 해주신 영화도 본 적이 있으며, 워낙 많이 들어서 익숙한 책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면서 또 새로운 느낌으로 빠져들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 (연쇄살인범에게 은퇴라는 단어를 붙인 소개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잊히지가 않는 문구입니다.)이 점점 사라져 가는 기억과 싸우며 딸 은희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고, 그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결말은 책을 아직 읽지 않았을지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서 아껴두겠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반전이 있는 결말임은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그 반전 속에서 '어?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책의 중간중간에 사라져가는 기억을 적으며 넌지시, 아무렇지 않은 듯 툭툭 나오는 잊히지 않는 문장들. 그리고 김영하 작가 스스로가 알츠하이머에 걸려보았거나, 주변에 알츠하이머 환자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을 해볼 정도로 구체적이고, 섬세한 표현. 그리고 어쩌면 섬뜩하리만큼 잘 표현한 살인범의 심리묘사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리만큼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총 100페이지가 안 되는 짧은 소설이었기에 빨리 읽을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는 소설입니다. 

 

작가님은 소설을 통해서 삶과 죽음, 그리고 악에 대한 통찰과 시간에 대한 통찰을 이야기 했다고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는데요, 사실 전 그런 것은 모르겠고, 작가님의 글의 섬세함과 치밀함에 감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글 중 인상깊었던 몇몇 구절을 소개해드리며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뭐든지 기록하고 그 기록을 몸에 지니세요. 나중엔 집도 못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7)
이 세상과 혼자만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죽이고, 달아나서, 숨었다, 다시 죽이고, 달아나서, 숨었다. 그때는 DNA 검사도, 폐쇄회로 TV도 없던 시절이었다. 연쇄살인이라는 용어조차 생경했다. 수십명의 거동수상자와 정신병자가 용의자로 지목돼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몇몇은 허위 자백까지 했다. 경찰서들끼리는 서로 협조를 하지 않아 다른 지역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경찰 수천 명이 작대기를 들고 애먼 야산만 쑤시고 다녔다. 그게 수사였다. 좋은 시절이었다. (15)
술만 아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25)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쓰는 ‘우연히’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30)
난생처음으로 필요에 의한 살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평생 오디오를 수집하던 남자가 회사의 지시로 행사용 앰프를 사러 다니게 되면 아마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내 생에 마지막 할 일이 정해졌다. 박주태를 죽이는 것이다. 그가 누구인지 잊어버리기 전에. (33)
박주태를 잡겠다고 마음먹은 후부터 갑자기 식욕이 돌아왔다. 잠도 잘 자고 기분도 좋다. 이게 은희를 위한 일인지 나 좋아서 하는 일인지 점점 헷갈리지 시작한다. (34)
‘미래 기억’은 앞으로 할 일을 기억한다는 뜻이었다. 치매 환자가 가장 빨리 잊어버리는 게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식사하시고 30분 후에 약을 드세요.”같은 말을 기억하는 게 바로 미래 기억이란다. 과거 기억을 상실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고 미래 기억을 못 하면 나는 영원히 현재에만 머무르게 된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면 현재는 무슨 의미일까. (44)
오이디푸스는 무지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파멸로 진행했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다. 파멸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무지로, 순수한 무지의 상태로 이행할 것이다. (61)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무서우 s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68)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에 대한 완벽한 배반.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이 낯선 기분들과 이 기분들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는 체험이 결정적이다. (7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