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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곽의 도서관] 독서후기 2022-11. 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Herr.Kwak 2023. 9. 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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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등 이미 읽었던 책.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책들로 가득한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추리 소설계의 거장이자 아이콘으로 꼽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추리소설계의 여왕으로 손꼽히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같은 맥락으로 제게는 다가오는 작가입니다. 추리 소설이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추리소설에서 가지지 못한 또 하나의 드라마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며, 곳곳에서 결말을 위한 암시와 복선이 다양하게 깔리는 소설. 읽으면서도 계속 빠져드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이번 매스커레이드 호텔이라는 소설도 그렇게 저에게는 다가왔습니다.

 

작가 생활 25주년을 기념하여 2012년 출판된 이 책을 거의 10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읽게 되었는데요, 지금 읽어도 무척이나 재미있고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출판 이후 2019년 영화화까지 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서 책소개에서 언급했듯이, 범행 현장에 남아있는 수수께끼와 같은 숫자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최근 논문 작업을 하면서 3만 개가 넘는 수많은 위도와 경도 좌표를 분석하면서 진행을 했기에 숫자를 딱 보는 순간 위도와 경도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어쩌면 단순하고 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위도와 경도라는 그 수수께끼가 메인이 아닌, 그 안에서 펼쳐지는 내용들이 주된 스토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호텔. 특히 최고급 호텔이라는 배경으로 나오는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 이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잠복근무를 하게 된 닛타 형사를 이끌어야 하는 인물인 나오미. 나오미라는 인물은 호텔리어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함과 동시에,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이라는 장소에 대한 자부심도 뚜렷한 인물입니다. 철두철미하고, 예의 바르고,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잘 처리하는, 그야말로 엘리트 호텔리어입니다. 하지만 호텔리어이기 때문에, 고객이 왕이라는 신념으로 일하는 그녀이기 때문에, 그녀가 일하는 내내 가지고 있는 그 상냥함과 친절함이라는 가면이 프로의식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 가면으로 인해서 너무나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생각과 더불어서 읽게 된 후기에서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라는 한 문장이 너무나 기억에 남았습니다. 최고급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의심스러운 얼굴들. 그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개개인의 가면들. 어쩌면 이러한 가면을 인식하는 데에는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로써 호텔과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관찰"하고 "의심"해야 하는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 누가 봐도 엘리트이지만, 호텔리어로써의 자부심과 신념을 가지고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과, 형사로써의 통찰력을 가지지만 어쩌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시선을 가지는 시선이 부딪히면서 말이죠. 그 두 시선이 겹치는 곳에서 만나는 고객들의 민낯 하나하나도 너무나 재미있고 다채롭습니다. 싱글룸 요금으로 스위트룸를 욕심내는 뻔뻔한 거짓말쟁이, 보상을 바라고 허위 절도 공작을 꾸미는 커플, 해고당한 분풀이를 무고한 호텔 직원에게 하는 남자, 가방 속에 스토커의 사진을 넣어 갖고 다니는 여자, 그리고 객실 안에서 귀신이 느껴진다는 시각장애인까지.

 

그들에게서 펼쳐지는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와 마지막에 범인으로 밝혀지는 인물과 호텔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닛타 형사, 나오미 호텔리어와의 이야기까지. 누구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갈만한 이야기가 그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지켜서 복수를 해야만 하는 원한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더불어 나오미 호텔리어의 한 마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에 찾아온다"는 말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그 속에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파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인간관계가 세상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처럼 힘든 풍파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히고, 나도 상처를 받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기도 하면서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 혹은 언젠가 복수를 해야 할 원한이 사무친 사람이 되기도 하겠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관계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일할 때 쓰는 "가면"과 친구들을 만날 때 쓰는 "가면" 그리고 집에서 오롯이 혼자 있을 때 그 모든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기 자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도 하죠. 

호텔이라는 곳은 익명성과 공공연함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정보로 체크인을 하고 본인의 기록을 남기지만, 그 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지나면 그 공간은 잊히는 공간이 됩니다. 때문에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의 나의 모습은 그날 하룻밤만은 나의 집이고 나의 쉼터이지만, 내 집에서의 내 모습과는 다르겠죠. 때문에 "가면무도회"라는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기까지 하는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주는 단순히 오락성이 강한 특성이 강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닛타 형사, 나오미 호텔리어, 노세 형사.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알게 되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는 추리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용의자 X의 헌신"을 넘어서는 여러 가지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 펼쳐지는 명 추리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용의자 X의 헌신 참 좋아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께 조심스럽게 추천을 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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