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곽의 도서관] 독서후기2020-06. 새의 선물 - 윤희경
12살 이후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12살의 진희의 시선으로 1969년의 어느 흔한 동네를 이야기한다.
진희의 동네는 바로 우리 우리 동네의 이야기일 수도, 옆동네의 이야기일 수도, 먼 타지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여러 가구가 'ㅁ'자 형태로 모여서 살며 가운데 모두의 집결지로서 우물이 존재하는 진희의 집이 주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진희의 정보의 원천이자 고찰의 공간이다.
1960년대 말의 상황답게 어느 여성이나 '여자 인생 두레박 신세'라고 할 정도로 힘들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상황에 직면하여 있다. 남편의 외도와 잦은 폭력을 견디어야 했고, 혹자는 기껏 탈출(가출 혹은 야반도주)을 하고서도 채 며칠이 안되어 돌아오는 광진테라 아줌마가 대표적인 그 시대의 여성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갈밭에 발을 딛고도, 바로 옆 고운 흙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갈밭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 길 외에는 길이 없다는 듯 열심히 개간해 나가는 신세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바로 옆 고운 흙길을 정녕 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척해야만 했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그 당시의 여성의 입장, 성에 대한 성숙, 슬픔에 대한 적응과 무관심. 혹은 그 모든 걸 속으로 삼키고 혼자서 견디어야 했던 애늙은이 진희는 처량하면서도 안쓰러울 뿐이다.
어른의 흉내를 냄으로써 아직 자신이 어린애임을 드러내는 친구들의 행태를 모두 이미 이해하고 한 단계 위에서 바라보는 진희는 왜 그렇게 성숙하다 못해 조숙해야 했을까?
소설의 끝엔 39의 진희가 남자와 몸을 섞고, 맥주를 마신다. 12살 이후 성장 할 필요가 없었다는 어린 소녀 진희. 그런 그녀가 39의 나이가 되어 39의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한 모습일지 사뭇 궁금하다.
그녀는 아직 12살에 머물러있는 것일까, 아니면 39살의 자신에 순응을 하고 살아가는 걸까?